[한국경제] 회계 부정조사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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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4월 2일 한국경제 CFO 마켓인사이트에 신재준 전무의 기고문 <회계 부정조사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이 게재되었습니다.

[한경 CFO Insight]
회계 부정조사, 또는 포렌식 조사라 불리는 부정조사는 기업이 이용하는 용역 중에서도 비용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기업에 가격을 제안하면 비용 수준에 놀라는 경우도 있고, 이미 비용 수준을 알고 있는 회사도 높은 비용 지불에 큰 부담을 느껴 낮은 비용을 제안하는 조사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가 부정조사를 위해 조사인을 찾는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 또한 회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다른 용역처럼 공개 입찰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 기업이 용역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가격만으로 조사인을 결정하는 것도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단순한 비용 부담 외에 조사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도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조사 결과는 감사의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보통 기업의 조사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는 기말 감사와 인접한 시기이다. 그래서 조사가 시작되더라도 물리적인 조사기간을 줄여 신속한 조사 결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10년 넘게 조사업무를 하다 보니 10년 전과 달라진 점이 보인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빨리 결과를 받아볼 수는 없을까?

절차보다 증거와 논리에 집중해야
다른 전문가의 조사를 검토하거나 또는 다른 전문가가 필자의 조사를 검토할 대 정해진 표준 절차를 정해놓고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식으로 업무를 진행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간단한 예로, 일반적인 이메일 검토 등을 통해 조사 대상 혐의의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었는데도, 수집된 매체에 포렌식을 방해하기 위한 프로그램 설치 여부 등 디지털 포렌식에서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각각의 절차를 수행하는 경우를 본다. 또, 내가 수행한 절차를 검토 받을 때 이러한 절차를 수행했는지 질문을 받기도 한다.

다양한 디지털 포렌식 분석 절차는 표준 절차처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게 아니다. 증거와 추론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조사는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 보다 발견된 증거와 추론의 논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어 혐의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이전 조사에서 수행했던 절차도 이번 조사에서는 수행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증거와 추론으로 조사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면 표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실무에서 불필요한 절차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사인의 주 책임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주 책임자는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조사의 모든 증거와 추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위해 조사 전반에 깊이 관여해야 한다.

핵심 쟁점 파악이 중요
조사 대상 사안이 늘어나면 조사 비용과 일정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사의 이해관계자 간 소통을 통해 조사 대상 사안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각 사안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조사 보고서를 보면 사실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일부 보고서는 정작 핵심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00페이지가 넘는 조사 보고서를 읽은 후에도 조사 대상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조사 실무자들이 법원의 판결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판결문을 보면 모든 사실을 다투지 않는다. 판결문은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이 다른 쟁점사항을 선별하고, 제시된 증거를 바탕으로 이에 대해 판단한다.

만약 부정조사 보고서가 모든 장황한 사실이 아닌 쟁점사항에 집중할 수 있다면 소통 시간을 줄여 조사비용을 줄이고 전체 일정까지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업이 조사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두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았다. 이 모든 사안에 대한 일차적인 노력의 책임은 조사인에게 있다. 하지만 회사도 이런 노력을 조사인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회계 부정조사 제도의 근거가 되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22조와 동 조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사의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는 조사 관련 주요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조사의 모든 단계를 감독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따라서, 회사의 입장에서 위 사안을 조사인과 협의하여 비용을 줄이고 일정을 단축할 수 있도록 조사인과 협의해야 하는 역할도 감사나 감사위원회가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조사를 평소에 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회사가 문제가 닥치고 나서야 조사 제도에 대한 감사위원회 등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에 쫓겨 하는 교육은 실무적 효과를 충분히 보기 어렵다. 따라서 감사위원회 등에 대한 조사 제도의 사전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향후에 있을지 모르는 부정조사 시 비용과 일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투자가 될 것이다.